둘째 걸음에서 원자 하나의 전자 준위를 배웠습니다. 그런데 원자를 수없이 모아 고체를 만들면 어떻게 될까요? 파울리 원리 때문에 같은 상태에 둘이 들어갈 수 없으므로(둘째 걸음 5장), 이웃한 원자들의 같은 준위가 서로 조금씩 어긋나며 갈라집니다. 원자가 \(10^{23}\)개쯤 모이면 갈라진 준위들이 촘촘히 늘어서 사실상 연속된 띠가 됩니다.
중요한 것은 띠와 띠 사이에 전자가 있을 수 없는 구간이 생긴다는 점입니다. 이것을 띠틈(band gap)이라 합니다. 전자가 채워진 가장 높은 띠를 원자가띠, 그 위 비어 있는 띠를 전도띠라 부릅니다.
전류가 흐르려면 전자가 «움직일 자리»가 있어야 합니다. 꽉 찬 띠 안에서는 전자가 자리를 바꿀 수 없어 아무리 전압을 걸어도 흐르지 못합니다. 여기서 세 갈래가 갈립니다. ① 도체 — 띠가 반쯤 차 있거나 두 띠가 겹쳐 있어 빈자리가 널려 있습니다(구리·알루미늄). ② 부도체 — 원자가띠는 꽉 찼고 띠틈이 아주 커서(대략 5 eV 이상) 전자가 넘어갈 수 없습니다(다이아몬드·유리). ③ 반도체 — 띠틈이 «애매하게» 작습니다(규소는 약 1.1 eV).
이 «애매함»이 반도체를 특별하게 만듭니다. 상온의 열에너지나 빛을 조금 받으면 일부 전자가 띠틈을 넘어 전도띠로 올라가 전류가 흐릅니다. 넘어간 전자가 남긴 빈자리를 양공이라 하고, 이것도 양전하를 띤 입자처럼 움직여 전류를 나릅니다.
즉 반도체는 «항상 통하지도, 항상 막지도 않는» 물질입니다. 조건에 따라 통했다 막혔다 하는 이 성질이 스위치를 가능하게 하고, 그 스위치가 다음 장의 트랜지스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