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고전 탐구의 신》 교재에 수록되어 있는 마키아벨리의 저서 『군주론』에 대해 발표해 보고자 합니다. 작품의 세부 내용을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이 책을 저술한 마키아벨리와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마키아벨리는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이탈리아의 정세는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이었습니다. 여러 도시 국가로 분열되어 통일을 이루지 못했고, 독일이나 프랑스 같은 주변 강대국들의 끊임없는 침략과 약탈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피렌체에 강력한 지도자가 등장하여 전성기를 이끌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 군주가 독재를 하기는 했으나, 탁월한 역량으로 국가를 매우 안정적으로 통치하며 큰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쓰게 된 배경에는 이러한 분열된 조국을 구하고 강력한 국가를 건설하고자 했던 고뇌가 깊이 깔려 있습니다.
『군주론』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을 간략히 정리하자면, “우리가 마땅히 행해야 하는 도덕적 이상과 실제로 작동하는 냉혹한 현실은 완전히 다르다”는 진실을 일깨워 주는 것입니다.
첫 번째로 살펴볼 개념은 운명의 조절과 피해의 최소화, 곧 포르투나와 비르투입니다. 한번 이렇게 상상해 보십시오. 내가 넉 달 뒤에 직장에서 해고를 당할 운명에 처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리고 그 운명 자체는 우리가 바꿀 수 없는 불가항력이라고 칩시다. 그렇다고 해서 운명을 바꿀 수 없으니 가만히 앉아 피해를 고스란히 당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해고되기 전까지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저축을 해 두고, 새로운 직장을 미리 알아보는 등 철저히 대비한다면 닥쳐올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말하는 바도 이와 정확히 같습니다. 불가항력적인 전쟁이나 위기라는 거대한 운명의 파도를 통치자가 완전히 없앨 수는 없더라도, 미리 제방을 쌓고 대비함으로써 국가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이자 독재 통치와 가장 밀접하게 연결되는 내용은 바로 “군주에게는 사랑받는 것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고 효과적이다”라는 명제입니다. 처음 이 구절을 접했을 때는 다소 의아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조국 이탈리아와 피렌체 시민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애국자였는데, 왜 공포가 사랑보다 더 중요하다고 역설했을까요? 하지만 저자의 감정을 배제하고 『군주론』의 현실주의적 통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점차 고개가 끄덕여지게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이란 관용과 자비, 선한 성품으로 백성들을 대하는 온건한 통치 방식을 의미합니다. 반면 공포는 군주가 국가 질서와 통치에 방해가 되는 자들을 단호하게 처벌하고 응징하는 엄격함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서, 지금 우리나라의 법 집행을 보면 너무 유하고 관대한 측면이 있잖아. 게다가 꼭 유하기만 한 게 아니라, ‘선택적 정의’가 적용되어 우리 편은 대충 봐주고 상대편은 가혹하게 다루는 모순이 존재하지. 하지만 그런 현실을 떠나서, 만약 국가의 법과 처벌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격하고 강력하다고 가정해 보자. 삼성이나 하이닉스 같은 핵심 기업의 첨단 기술과 국가 기밀을 해외로 빼돌리는 산업 스파이가 생겼을 때, 조선시대에 삼족을 멸하듯, 혹은 이스라엘의 모사드처럼 지구 끝까지 추적해서 가혹하게 단죄한다면 감히 기술을 빼돌릴 엄두를 낼 수 있겠니?
절대 못 빼돌리겠죠.
그렇지, 감히 엄두를 못 내지. 그런데 우리는 지금 너무 미온적으로 처벌하고 봐주니까 계속 발생하는 거야.
선생님 말씀처럼, 마키아벨리가 공포를 기반으로 한 강력한 통치를 주장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인간의 본성은 본래 이기적이고 나약하며 은혜를 쉽게 잊는다는 현실을 꿰뚫어 보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인간의 본성이 태어날 때부터 선하고 성숙했다면, 공포 정치는 전혀 필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이 본래 연약하고 간사하다는 것을 전제로 둔다면, 백성들의 변덕스러운 사랑에 의존하기보다 엄격한 법과 공포로 질서를 다잡는 통치가 국가를 유지하는 데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실제 역사에 대입해 봅시다. 우리가 꿈꾸는 이상적인 사회란 법의 강제 없이도 모두가 자유롭게 여행하고, 맛있는 것을 먹으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사회일 것입니다. 반면 마키아벨리는 철저하게 현실에 발을 딛고 국가 전체를 안정시키기 위해 통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를 우리나라 역사에 대입해 본다면, 대한민국이 가장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이루었던 시기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과 전두환 대통령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정권은 국민들에게 온건한 사랑으로 호소하기보다는 강력한 권력과 통제로 사회를 통솔했고, 그 결과 국가의 경제 성장률을 경이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렸습니다. 국가 발전이라는 거시적 목표만을 놓고 본다면 매우 긍정적인 성과를 거둔 셈입니다. 그러나 개인의 관점으로 내려오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국가 발전이라는 명목 아래 국민 개개인이 누려야 마땅할 표현의 자유나 기본적 인권이 가혹하게 억압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칠판에 ‘중립’과 물음표를 표시해 두었습니다. 강력한 공포와 통제로 국가의 발전을 이룰 것인가, 아니면 자유와 인권을 우선적으로 보장할 것인가. 이 질문은 예와 아니오로 쉽게 결론 내릴 수 없는 매우 무거운 딜레마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국가가 공포 정치에만 매몰되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한다면,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완전히 차단되고 인터넷 통신조차 통제당하는 암흑에 빠지게 됩니다. 유능함이 결여된 채 맹목적인 폭력과 공포만 휘두르는 정권은 결국 북한과 다를 바 없는 파멸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반대로 모든 통제를 풀고 무조건적인 사랑과 관용만으로 나라를 다스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군주론』에는 이에 대한 명확한 역사적 반면교사가 등장합니다. 바로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을 격파했던 로마의 영웅 스키피오 장군의 사례입니다. 스키피오는 스페인과 시칠리아 주둔군을 통솔할 때 군사들에게 지나친 관용과 자유를 베풀었습니다. 그 결과 군대의 기강이 무너져 군사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치명적인 위기를 겪었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나약하고 쉽게 나태해지기 때문에, 지도자가 무조건적인 사랑과 자유만 허용하면 오히려 더 큰 방종과 혼란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예시입니다.
이것으로 제가 준비한 『군주론』 분석은 마쳤습니다. 국가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어느 정도의 엄격한 통치가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개인의 존엄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사랑과 관용의 가치를 우선해야 하는지 선택하는 것은 결국 여러분의 몫입니다. 다만 우리가 이 두 가지 가치의 장단점과 딜레마를 깊이 있게 성찰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케이. 아주 훌륭했어. 그러면 이 발표를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느낀 의서의 솔직한 소감은 어때?
처음에 이 발표를 준비할 때는 ‘이것이 정답이다’라고 명확하게 결론을 내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어느 한쪽만이 옳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맞고 틀림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다름과 상황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자유를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것은 사랑과 인권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회 덕분이지만, 만약 무조건적인 자유만 주어지고 사회적 통제나 질서가 완전히 사라진다면 사회는 무질서와 범죄로 파괴될 것입니다. 반대로 국가의 질서와 발전을 위해 공포와 강제력만 사용한다면 인간의 창의성과 자유가 짓밟히게 됩니다. 결국 사회를 지탱하는 질서와 개인이 누려야 할 자유 사이에서 어떻게 지혜롭게 균형을 찾아야 하는지 깊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오케이! 아주 잘 정리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