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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길어지는 데에는 두 가지 까닭이 있다. 하나는 할 말이 정말 많아서고, 다른 하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다. 우리는 앞의 것을 흔히 기대하지만, 실제로 만나는 긴 글은 거의 언제나 뒤의 것이다.
드라마 《미생》의 신입사원 장백기는 자기가 쓴 보고서가 재무팀 결재까지 통과한 것을 확인하고 마음을 놓는다. 그런데 사수인 강 대리는 그 서류를 돌려주며 짧게 말한다. 장황하다고. 비전문적인 용어가 많다고. 결재가 났는데 뭐가 문제냐고 항변하는 후배에게 강 대리가 덧붙인 한마디가 이 수업의 전부다. “이걸 장백기 씨가 진행하는 사업이라고 생각했다면 문장을 리드할 수 있었을 겁니다.”
사람의 머리는 정직해서, 어떤 일의 앞뒤를 또렷이 붙들고 있으면 문장이 저절로 짧아진다. 반대로 그 일이 왜 그렇게 되는지 스스로도 흐릿할 때, 머리는 그 빈자리를 메우려고 수식어와 어려운 낱말을 끌어다 쓴다. “사료됩니다”, “요구되는 실정입니다”, “다각적인 검토가 필요합니다” 같은 말들이 그렇다. 얼핏 정중하고 신중해 보이지만, 가만히 뜯어보면 누가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가 통째로 비어 있다. 주어가 사라진 문장은 책임도 함께 지워 버린다.
학교에서 우리는 대체로 반대로 배운다. 분량을 채우는 법, 그럴듯하게 늘리는 법, 어려운 말로 감싸는 법. 그렇게 익힌 습관은 시험지 위에서는 점수가 되지만, 누군가 그 글을 읽고 실제로 무언가를 결정해야 하는 자리에서는 곧바로 바닥을 드러낸다. 읽는 사람이 뜻을 헤아리느라 두 번 읽어야 하는 문장은, 그 자체로 상대의 시간을 빼앗는 일이다.
그렇다면 문장을 ‘리드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길이를 줄이는 기술이 아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고, 그래서 얼마만큼 어떻게 되었으며, 내가 지금 무엇을 하겠다—이 세 가지를 내 입으로 순서대로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얼마만큼’은 반드시 숫자여야 하고, ‘무엇을 하겠다’의 주어는 반드시 나여야 한다. 이 두 가지만 지켜도 문장은 절반으로 줄고, 뜻은 두 배로 또렷해진다.
여기서 한 가지를 더 짚어야 한다. 장백기의 문장이 길었던 진짜 이유는 게을러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는 누구보다 열심이었다. 밤을 새워 자료를 모았고, 폰트와 서식까지 맞추었다. 그런데도 문장이 흐려진 것은, 그 일이 아직 남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시키니까 하는 일, 결재만 나면 끝나는 일에는 아무도 주인이 되지 않는다. 주인이 아닌 사람의 글은 아무리 공들여도 겉돌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강 대리의 지적은 문장에 대한 것이 아니라 태도에 대한 것이었다. 결재가 났으니 된 것 아니냐는 말에 그가 물러서지 않은 까닭도 여기에 있다. 서류는 통과했지만 그 서류를 읽을 다음 사람, 그리고 그 다음 사람이 또 한 번 뜻을 헤아려야 한다면, 그 일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통과와 완성은 다른 말이다.
실제로 문장을 짧게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고되다. 길게 늘여 쓰면 애매한 채로 넘어갈 수 있지만, 짧게 쓰려면 애매한 것이 그대로 드러난다. 며칠이 늦어지는지 모르면 “최대 7일”이라고 쓸 수 없고, 무엇을 할지 정하지 못했으면 “바꾸겠습니다”라고 쓸 수 없다. 그러니 짧은 문장은 글솜씨의 결과가 아니라 알아낸 만큼의 결과다. 모르면 짧게 쓸 수가 없다.
이 이야기가 회사원의 일로만 들린다면 한 대목을 더 보아야 한다. 강 대리는 후배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결정하는 숫자에 누군가는 목숨을 건 행동을 해요.” 엑셀 한 칸의 수치가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안전 장비를 바꾸고, 배에 실리는 짐을 묶는 힘을 정한다는 뜻이다. 글과 숫자는 종이 위에서 끝나지 않는다. 반드시 누군가에게 가 닿는다.
그러니 짧게 쓰라는 말은 성의를 줄이라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짧게 쓰려면 끝까지 알아야 하고, 끝까지 알려면 그 일을 내 일로 삼아야 한다. 문장을 장악한다는 것은 결국, 내가 그 일의 주인이 되겠다는 선언이다.
어느 쪽이 더 성의 있어 보입니까? 어느 쪽이 더 쓸모 있습니까?
📌 앞의 두 쌍은 연논술이 지은 보기입니다 — 드라마의 상황만 빌려 왔을 뿐 대사가 아닙니다. 맨 아래 셋째 쌍은 양쪽 다 드라마에 나온 글입니다 — 장백기가 처음 쓴 보고와, 지적받고 고쳐 낸 보고.
“본 건 중동 지역 화물 운송 건에 관해서는 라마단 기간의 종료로 인하여 현지 항만의 통관상 지연이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 있는 소지가 상존하는 것으로 파악되어, 이에 대한 세밀한 주의 및 일정 조정 검토가 요청된다고 사료됩니다.”
“8월 18일 라마단이 끝나면서 항만이 밀려 통관이 최대 7일 늦어질 것으로 봅니다.
납기를 지키기 위해 3항차 선적분을 우회 항로로 바꾸겠습니다.”
한 쌍 더 — 가장 흔한 “진행 중입니다” 보고입니다.
“금번 사안과 관련하여 관련 부서와의 협의를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며, 제반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최적의 방안을 도출할 수 있도록 다각적인 검토를 진행 중에 있음을 보고드리는 바입니다.”
“영업팀과 두 차례 회의했고,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금요일까지 두 가지 안을 만들어 다시 보고드리겠습니다.”
드라마 《미생》에서 장백기가 처음 쓴 보고와, 강 대리에게 지적받고 고쳐 낸 보고입니다. (출처 — 연플래닝 아카데미 「드라마 ‘미생’에서 나타난 ‘글쓰기’의 중요성」 자료)
“이슬람 최대 명절 중 하나인 라마단이 지난 8월 18일에 끝났습니다.
따라서 중동항로의 거래량과 실재 적재비율이 다시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라마단 직전의 실재 적재비율은 95%에 육박했습니다.)
또한 중동 항로 선사협의체에서는 2012년 7월 중 컨테이너 당
300달러의 성수기 할증료를 부과할 예정이었으나 이를 유예하였습니다.”
“- 라마단(2012.7.20~2012.8.18) 종료에 따라 중동항로 물동량 및 소석률 회복이 예상됨
- IRA가 7월 중 적용할 예정이던 PSS(USD300/TEU)를 유예함.”
⭐ 어? 우리가 배운 것과 반대 아닌가요? — 우리는 “한 덩이를 단문 셋으로 늘려 쓰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다섯 줄을 두 줄로 줄였습니다.
겉모습은 반대지만 속은 같습니다. 둘 다 군더더기를 걷어내고 숫자를 남긴 것입니다.
다른 것은 읽는 사람뿐입니다 — 회사 보고는 하루에 수십 장을 훑는 사람이 읽으니 개조식으로 더 줄이고,
여러분의 계획서·자기소개서는 한 사람이 천천히 읽으니 단문 셋이 알맞습니다.
글은 언제나 읽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맞춥니다.
⭐ 학생들에게 이렇게 물어보세요 — “왼쪽 문장을 쓴 사람은, 이 일을 알고 있을까요?”
📄 셋째 쌍을 줄마다 뜯어 본 인쇄용 자료가 따로 있습니다 —
「드라마 ‘미생’에서 나타난 ‘글쓰기’의 중요성」 열기 →
⭐ 그리고 첫 쌍을 가리키며 — “드라마 주인공이 실제로 쓴 글은 어느 쪽일까요?” 대개 왼쪽을 고릅니다.
길고 어려워 보이는 쪽이 더 ‘일 잘하는 글’ 같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착각을 깨는 것이 오늘 수업입니다.
아래 실습 문장을 장면마다 하나씩 뜯어 가며, 소리로 읽어 드리고 단문 셋까지 완성합니다. 혼자 볼 때는 재생만 누르면 되고, 수업에서는 장면 단추로 끊어 쓰십시오.
숙제 문장 NS-JOB-0001-W-001 —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고쳐 봅니다.
우리말은 결론이 맨 끝에 옵니다. 읽는 사람은 200자를 다 참고 나서야 결론을 만납니다.
218자에서 진짜 정보는 이 넷뿐입니다. 나머지는 이 넷을 감싸고 있던 포장지입니다.
원인을 하나로 못 박고, 숫자를 넣습니다.
“운용되어 온 결과”는 한 글자도 쓰지 않았는데, 뜻은 그대로 남았습니다.
손해를 숫자로 적습니다. 그런데 원문에는 금액이 없었습니다. 없는 숫자를 지어내면 거짓말이 됩니다.
주어를 저는 / 저희는으로 두고, 언제까지를 반드시 넣습니다.
“조속한 시일 내에”가 아니라 “이달 안에” — 이 한 가지가 문장의 무게를 바꿉니다.
이 말들은 길이만 늘릴 뿐, 읽는 사람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습니다.
짧게 쓰라는 말은 말을 아끼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 셋을 한 문장씩 따로 맡기라는 뜻입니다.
이제 아래 칸에 여러분이 고친 단문 셋을 직접 써 보세요.
소리가 안 들리면 재생을 한 번 더 눌러 주세요(브라우저가 첫 소리를 막는 경우가 있습니다). 화면 아래 막대를 누르면 그 장면으로 바로 갑니다.
⛔ 쓰지 않는 말 — 사료됩니다(→생각합니다) · 조속한 시일 내에(→이달 안에) · 다각적인 검토(→○○를 확인하겠습니다) · 요구되는 실정입니다(→저희가 ~하겠습니다)
⛔ 쓰지 말 것 — “사료됩니다 · 요구되는 실정입니다 · 다각적인 검토 · 조속한 시일 내에”
위의 공장 문장은 어른들의 보고서였습니다. 그런데 만연체는 회사에만 있는 병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이번 주에 쓴 글에도 똑같이 들어 있습니다. 세 가지를 가져왔습니다 — 계획서, 자기소개서, 그리고 스스로 세우는 목표.
셋은 서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각각 3분 안팎의 제 영상이 붙어 있고, 한 편만 봐도 그 글 하나는 끝까지 배웁니다. 어느 것을 먼저 보든 상관없습니다. 영상을 보고 고쳐도 되고, 먼저 고쳐 본 뒤 「선생님이 고친 글 보기」로 견주어도 됩니다.
이 한 편만 봐도 됩니다. 아래 실습 ②와 짝입니다.
계획서는 잘 쓰면 내일 아침에 무엇을 할지 알려 주는 글이고,
못 쓰면 쓴 사람조차 무엇을 할지 모르는 글이 됩니다.
그래서 다 읽고 나도 내일 아침에 무엇을 하면 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아마 쓴 사람도 모를 겁니다.
그리고 문장마다 숫자를 하나씩 넣습니다.
원문에는 없던 점수·쪽수·시각이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 쓰지 말 것 — “사료되는바 · 각오를 다지는 바입니다 · 보다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 철저히 · 전반적으로”
💡 여기서는 숫자를 지어내는 게 아닙니다. 내 점수는 내가 이미 아는 숫자입니다. 찾아서 적으십시오.
이 한 편만 봐도 됩니다. 아래 실습 ③과 짝입니다.
동아리에 들어갈 때도, 학교를 옮길 때도, 나중에 일자리를 구할 때도 씁니다.
가장 많이 쓰면서, 가장 많이 헛쓰는 글입니다.
딱 한 장면만 고르세요. 잘한 일을 여러 개 뭉치면, 그게 바로 다시 장황해지는 길입니다.
그런데도 읽은 사람은 이 학생을 성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점심시간마다 교실을 돌았고, 9명을 24명으로 만들었으니까요.

⭐ 이 글의 병은 앞의 둘과 다릅니다. 길어서가 아니라, 증거가 하나도 없어서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긍정적·밝은·원만한·성실한·책임감 있는·적극적인 — 여덟 개나 썼는데 읽는 사람 머리에는 얼굴이 안 그려집니다. 이 여덟 마디는 다른 누가 써도 똑같이 맞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 쓰지 말 것 — “긍정적인 · 밝은 · 원만한 · 성실한 · 책임감 있는 · 적극적으로 · 보람을 느끼는 편 · ~되고자 하는 바입니다”
💡 성실하다고 쓰지 말고, 성실했던 날 하루를 쓰십시오. 판단은 읽는 사람이 합니다.
⭐ ‘성실하다’는 말이 한 번도 안 나옵니다. 그런데 이 글을 읽은 사람은 이 학생을 성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점심시간마다 교실을 돌았고, 9명을 24명으로 만들었으니까요. 말하지 말고 보여 주는 것 — 이것이 자기소개서의 전부입니다.
이 한 편만 봐도 됩니다. 아래 실습 ④와 짝입니다.
의지가 약해서가 아닙니다.
목표를 동작이 아니라 마음가짐으로 적었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안 합니다.
전부 동작이 아닙니다. 손발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가 한 줄도 없습니다.

⛔ 쓰지 말 것 — “지양하고 · 자기 주도적인 · 확립함으로써 ·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자 · ~하는 실정이므로”
💡 목표는 마음가짐이 아니라 동작입니다. 내일 아침 남이 보고 “했다/안 했다”를 판정할 수 있어야 목표입니다.
⭐ 세 글 모두 원문의 63% 안팎으로 줄었습니다(231→145 · 215→135 · 227→129). 그런데 줄었는데 내용은 늘었습니다. 원문에는 없던 점수·인원·시각이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짧게 쓴다는 것은 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확인할 수 있는 것만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배운 것을 일주일 동안 하루 한두 개씩 손에 붙입니다. 독서록 · 모둠 소감문 · 체험학습 보고서 · 반장 공약 · 동아리 지원서 · 사과문 · 부모님께 드리는 부탁 글 · 봉사활동 소감문 · 방학 계획 · 선생님께 드리는 건의문. 열 갈래 모두 여러분이 진짜로 쓰는 글입니다.
숙제 하러 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