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홀드 니버는 살아 있을 때 미국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떨친 세계적인 인물이다. 그리고, 목사로 활동하다 기독교 윤리학 교수가 되어 1960년 은퇴할 때까지 계속 재직했다. 처음에 자유주의적 사회복음을 이상으로 삼았으나 1930년대 공황의 그늘을 보면서 사회개혁을 변혁할 필요성을 느꼈다.
하지만 니버는 나중에 자유주의와 맑스주의를 똑같이 비판하였다.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라는 책은 1929년 세계 대공황 발발 이후 자본주의가 가장 극심한 위기에 봉착했던 1930년대 초반에 나왔다.
이제부터 책 내용을 요약해보겠습니다.
개개의 인간들은 행위의 문제를 결정할 때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더욱 존중한다는 점에서 도덕적이다. 개개인들은 또한 사회적 상황을 공정한 객관성의 척도로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이기주의적인 요소들을 정화시킨다. 하지만 집단을 구성하는 개인들이 개인적 관계에서 보여주는 것에 비해 훨씬 심한 이기주의가 모든 집단에서 나타난다.
집단의 도덕이 개인의 도덕에 비해 열등한 이유는 오직 개인들의 이기적인 충동으로만 이루어진 집단적 충동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책은 도덕주의자들을 비판하고 있다.
현대 도덕가들이 저지른 가장 큰 잘못은, 우리가 겪는 사회적 어려움들은 자연과학에 사회과학이 보조를 맞추지 못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 점이다.
또한 오늘날 교육자들은 모든 시대의 합리주의자들처럼 삶에서 이성의 기능을 지나치게 신뢰한다. 그러나, 역사 세계 자체는 이성적이지 않은 세력들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
사회과학자들이 좋아하는 방법은 조정인데, [판독 불확실: 천대받는] 집단이 조정을 통해 사회 안에서 충분한 정의를 믿을 수 있겠는가? 사회의 권력 불균형에 의해 생겨난 사회적 갈등의 해소는 그 불균형이 지속되는 한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회학자는 거의 없다. 이처럼 도덕가들도 특히 집단적 행동에서 비합리적 이기주의의 끈질김 — 집단 사이에서 관계는 정치적이다 — 인간의 역사에서 끝까지 불가피한것을 알지 못한다.
인간 역사에서 사회는 정치적이다. 즉, 관계는 집단의 힘에 의해서 결정된다. [판독 불확실: 사회적 각성과 도덕적 선의지의 증가가 이를] 완화시키는것에 도움이 될진 몰라도, 그것으로 갈등 자체를, 사회적 갈등의 야만성을 완전히 제거할 순 없다. 이러한 갈등의 제거는 어느정도 [판독 불확실] 그러나 이는 민간(인간) 사회의 이성과 동정심을 발휘할때 이루어질 것이다.
사회정의와 미래의 평화는 [판독 불확실: 현실을] 넘어서 있는 이상이다. 요인들과 강제적 보완들이 결합되어 있는 많은 사회전략들에 의존한다. 앞으로 다가올 세기에 대한 집단적, 인간의 근본관심은 단 하나의 사회전략이 아니라 여러 수준에서 도덕적 공동작업이 전적으로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강제력이 충분히 비폭력적으로 되는 그런 사회의 건설에 있다.
이제부터 이 글의 문제점을 말해보겠습니다.
[쟁점 파악] "집단 이기주의와 사회적 갈등은 끝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니버의 견해에 동의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것이지만 니버가 지나치게 비관주의에 빠져 있지 않나 하고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라인홀드 니버는 생전에 미국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떨친 세계적인 인물이다. 목사로 활동하다 기독교 윤리학 교수가 되어 1960년 은퇴할 때까지 계속 재직했다. 처음에는 자유주의적 사회복음을 이상으로 삼았으나, 1930년대 대공황의 그늘을 보면서 사회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러나 니버는 이후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똑같이 비판하였다.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는 1929년 세계 대공황 발발 이후 자본주의가 가장 극심한 위기에 봉착했던 1930년대 초반에 출간되었다.
이제부터 책 내용을 요약해 보겠다.
개개인은 행위를 결정할 때 다른 사람의 이익을 존중한다는 점에서 도덕적이다. 개개인은 사회적 상황을 공정하고 객관적인 잣대로 바라볼 수 있을 만큼 이기주의적 요소를 스스로 정화하기도 한다. 그러나 개인들이 모여 이룬 집단은, 개인이 사적인 관계에서 보여주는 것보다 훨씬 심한 이기주의를 드러낸다.
집단의 도덕이 개인의 도덕보다 열등한 이유는, 집단적 충동이 결국 개인들의 이기적 충동이 모여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도덕주의자들의 낙관을 비판한다.
현대 도덕가들이 저지른 가장 큰 잘못은, 우리가 겪는 사회적 어려움이 자연과학의 발전 속도에 사회과학이 보조를 맞추지 못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여긴 점이다.
또한 오늘날의 교육자들은 모든 시대의 합리주의자들처럼 삶 속 이성의 기능을 지나치게 신뢰한다. 그러나 역사와 현실 세계는 오히려 이성적이지 않은 힘들에 의해 움직여 왔다.
사회과학자들이 선호하는 방법은 '조정'이지만, 소외된 집단이 조정만으로 사회 안에서 충분한 정의를 얻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권력 불균형에서 비롯된 사회적 갈등은, 그 불균형이 지속되는 한 결코 해소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회학자는 많지 않다. 이처럼 도덕가들 역시 집단 행동에서 비합리적 이기주의가 얼마나 끈질긴지 — 집단 사이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며, 인류 역사에서 이는 끝까지 불가피하다는 것을 —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인간 역사에서 사회는 정치적이다. 즉 집단 사이의 관계는 힘에 의해 결정된다. 사회적 각성과 도덕적 선의지의 증가가 이를 완화하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어도, 그것만으로 사회적 갈등 자체와 그 야만성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이러한 갈등을 어느 정도 완화하는 것은 인간 사회가 이성과 동정심을 발휘할 때에야 비로소 가능해질 것이다.
사회정의와 항구적인 평화는 현실을 넘어서 있는 이상이다. 그것은 온건한 설득과 강제적 보완이 함께 결합된 여러 사회 전략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다가올 세기, 인류의 근본 과제는 단 하나의 사회 전략이 아니라 여러 수준의 도덕적 공동 작업이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강제력이 최대한 비폭력적으로 작동하는 사회를 건설하는 데 있다.
이제부터 이 글의 문제점을 이야기해 보겠다.
[쟁점 파악] "집단 이기주의와 사회적 갈등은 끝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니버의 견해에 동의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니버가 지나치게 비관주의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