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생 글 모음
학생 글 모음 · 중1 · 시청점

왜 불필요한 것을 욕망하는가

현준 · 욕구와 욕망의 차이에서 출발해 루소·스피노자로 이어지는 인간 욕망론.

우리는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를 향해 "너는 이미 장난감이 아주 많지 않니? 가지고 있는 것도 다 쓰지 못하면서 새 장난감이 왜 필요해?"라며 야단치는 부모의 모습을 자주 목격한다. 그러나 부모 역시 자신이 끊임없이 새 자동차와 새 옷을 갖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왜 자신에게 굳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대상을 욕망하는 것일까?

육체적·자연적 욕망에 사로잡혔을 때 우리는 자연의 법칙에 종속된다. 모든 생물체는 욕망의 존재로서 생물학적 결정론에 따르게 되며, 인간 또한 예외가 아니다.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 적당량의 음식물, 휴식, 운동, 그리고 종족 번식을 위한 성적 접촉 등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이 여기에만 한정된다면 인간과 동물 사이의 차이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생리적이고 기본적인 결핍을 채우려는 움직임은 '욕구(need)'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진정한 의미의 '욕망(desire)'은 사물이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한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상징하는가와 연관된다. 즉, 욕망은 사물의 물질적이거나 실용적인 면과 관계하기보다, 우리가 살아온 가정환경, 문화적 배경, 개인의 역사와 경험 등과 직결된다.

욕망의 특징은 갈구하던 대상을 차지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강렬하게 되살아난다는 점이다. 이미 루크레티우스는 기원전 1세기에 이러한 욕망의 모순을 지적한 바 있다. 우리가 욕망하는 대상을 손에 넣을 수 없을 때는 그것이 다른 어떤 것보다 훌륭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것이 되는 순간 우리는 또다시 다른 것을 원하게 되며, 이로 인한 갈증은 끊임없이 계속된다.

욕망을 '부정(negation)'과 '결핍(lack)'으로 이해하는 전통적 철학의 관점과 달리, 스피노자는 욕망을 가치를 창출하는 생산적인 힘으로 규정한다. 그는 욕망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욕망은 인간의 본질 그 자체이다." 즉, 욕망은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고 유지하고자 하는 노력(코나투스)인 것이다.

루소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사회가 어떻게 인간에게 새로운 욕망을 불러일으키는지, 그리고 왜 그것이 불평등과 종속의 원인이 되는지를 설명한다. 자연 상태의 인간은 서로 경쟁 관계가 아니었기에 타인을 의식하거나 질투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문화적·사회적 삶을 시작하면서 인간은 서로를 비교하고 동경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사회는 필요를 넘어서는 욕망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근원이 되며, 이는 인간이 왜 '불필요한 것'을 욕망할 수밖에 없는지를 다시 한번 보여준다.

"왜 불필요한 것을 욕망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욕망 자체의 본성으로 인해 우리는 필요하지 않은 것을 욕망하게 된다. 욕망은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물질적 필요라는 생물학적·자연적 강제로부터 벗어나는 순간부터 발생한다.

둘째, 오직 욕망을 통해서만 우리는 진정으로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과 타자성(alterity)을 추구함으로써 인간은 비로소 이기적이고 동물적인 자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욕망은 본질적으로 무한을 지향하기에 인간은 이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좌절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욕망의 비효율적인 성격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결국 우리가 필요하지 않은 것을 욕망한다는 사실 자체가, 인간이 단순한 생물학적 존재를 넘어서는 증거인 셈이다.